칸에서 생긴 일 (EthCC[8] @Cannes)
![칸에서 생긴 일 (EthCC[8] @Cannes)](/content/images/size/w2000/2025/07/firework.jpg)

칸에 다녀왔습니다. 유명한 영화제로만 들어본 곳이었는데, 좋은 기회가 생겨서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제 인생에서 이렇게 영어로 많이/깊게 얘기해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굉장히 알찬 (그리고 피곤한) 일주일이었습니다. 느낀 점이 굉장히 많은데, 하나씩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어쩌다가 칸까지
매년 이더리움을 다루는 행사가 세계 곳곳에서 열립니다. EthCC는 그 중 가장 규모가 큰, 유럽 기반의 행사입니다. 원래 매년 파리에서 열었던 것 같은데 이번 연도는 남부 프랑스의 대표 휴양지 칸에서 성대하게 열렸습니다. 휴양지라 그런지 물가가 살벌했습니다. 저는 행사 참석 겸, EPF (Ethereum Protocol Fellowship)에서 진행할 프로젝트 발표도 할 겸 갔습니다. 녹화된 발표는 부끄럽지만 공유드립니다. (00:22:16 - 00:31:00)
표면적인 이유는 행사 참석이긴 한데, 이 행사를 중심으로 수많은 사이드 이벤트가 칸 시내 곳곳에서 열리고 꽤나 영향력 있는 사람들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저 같이 이 분야에 진지하게 커리어를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이들과 인사를 나눌 절호의 기회이기도 합니다. 사실 메인 행사에서는 그렇게 시간을 많이 보내지는 않고 주로 다른 사이드 이벤트나 여기서 만난 사람들과 저녁을 먹거나 하면서 보냈습니다. 티켓 값이 조금 아깝긴 한데, 칸 영화제가 열리는 행사장에서 공짜 점심을 두 번 정도 먹은 것으로 만족하겠습니다.
인상 깊은 대화들
이번 EPF에 선정된 펠로우는 총 18명인데, 개인 사정으로 못 온 2 ~ 3명 정도를 제외하면 모두 칸에 모였습니다. 제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펠로우들은 모두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국적, 나이, 학력, 커리어 등등이 모두 달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목표 (코어 개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들과 대화하는 것은 무척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인지라 나이를 가장 먼저 의식하게 되는데, 저와 동갑인 노르웨이 친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저보다 경험이 훨씬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마 저는 선정 과정에서 조금 부족한 경험임에도 학생이라 귀엽게 봐주신 것 같아요. 😂
q다른 펠로우뿐만 아니라, 현업에서 실제로 활약하고 있는 개발자들도 정말 많이 만났습니다. 6개월 정도 짬짬이 Ream이라는 팀에 커밋하고 있는데 매주 화상 회의에서 보다가 이들을 실제로 보니 너무 반가웠습니다. Prysm, Nimbus 팀 멤버들과도 저녁을 함께 했는데 기술적 이야기부터 해서 전반적인 사람 사는 얘기까지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저는 향후 Prysm 팀에 합류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좋은 기회일 것 같아 궁금한 점들을 많이 물어봤습니다. 제 스스로 내린 결론은, "지금 하고 있는 EPF부터 잘 끝내자"입니다.
이 길을 선택한 이유
이더리움에서 코어 개발자를 하거나 리서처가 된 사람들은 하나 같이 다른 커리어 패스를 걸어온 사람들이라, "어짜다가 여기로 흘러들어왔나"가 주요 주제 중에 하나입니다. 대부분 프라이빗한 대화라 모든 것을 여기 적어두긴 그래서, 인상 깊었던 몇 문장만 옮겨두려고 합니다.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함께 한 한 리서처는 이에 대해 "딸 아이에게 더 자유로운 세상을 선물해주고 싶다"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대부분의 포지션이 Remote 기반이기 때문에 스스로가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어진다고 말합니다. 전세계에서 이렇게 똑똑하고 Self-motivated된 사람들이 모이는 건 이들이 살아온 배경은 달라도 각자 본인이 생각하는 "자유"를 찾기 위함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생태계의 문화도 그 가치관을 매우 존중하는 분위기이구요. 저도 이들의 철학에 깊게 공감하지만 아직 누군가에게 내 철학을 얘기할 정도로 경험을 쌓은 사람은 아니기에 결국 나만의 철학을 만들어 나가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 Thesis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길이 곧 저라는 사람이 걸어가는 길이 아닐까 싶네요.
그들이 일하는 방식
go-ethereum의 핵심 개발자 중 하나인 Marius는 "지식을 나눠라"라고 얘기했습니다. 그것이 본인과 그의 친구들이 지식을 축적한 방식이고, 이더리움 문화의 Super Policy라고 말합니다. 확실히 이들이 일하는 방식은 모든 것이 공개됨과 동시에 분산화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 방식이 빠르게 가는 방법은 아닐지라도 더 오래, 멀리 갈 수 있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동시에 구성원들은 분산화되고 조각조각 산발된 정보들을 쉽게 볼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기는 합니다. LLM을 통합해 서로 다른 포럼과 정보 소스들을 한번에 Aggregate하는 ethereum.forum도 최근에 생겼습니다. 저도 이 문제 의식에 동감하는지라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피부로 와닿는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
영어를 이렇게 집약적으로 쓴 게 사실상 처음이라, 이 과정에서 많은 것들을 느꼈습니다. 일단, 쫄 필요가 없다는 것. 영어라는 언어는 정답이 없고 모두가 다른 영어를 구사하기 때문에 생각을 너무 깊게 할 필요가 없더라구요. 다만 말하면서 단어가 생각 안 나는 경우가 많아서... 좀 더 유창하게 구사하려면 제 스스로의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아직 제 생각을 100% 표현하기가 어렵긴 하네요.
오프라인의 힘을 또 한 번 느꼈습니다. 작년 Devcon에서는 수많은 인파를 보며 이 커뮤니티가 실재함을 알았고, 이번 EthCC에서는 이들과 일대일 대화를 굉장히 많이 함으로써 각 개인이 생각하는 방식을 조금 엿볼 수 있었습니다. 확실히 구글 밋으로 전달되지 않는 비언어적 요소가 중요한 것 같아요. 리스닝은 오프라인이 훨씬 편하네요.
또 하나, 서로 다른 문화에서 왔기 때문에 제가 하는 어떤 얘기나 행동이 간혹 무례하게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있습니다. 이것도 학교에서 알려주지 않는 거라, 결국 제 스스로가 더 많이 부딪혀야 되겠더라구요. 이번처럼 해외를 잠깐 나오는 게 아니라 수개월 정도 외지인으로써 현지 커뮤니티에 들어가는 과정을 거치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마지막, 궁금한 게 있으면 그냥 물어보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냥 실행하면 되는 것 같습니다. 뭐 너무나도 당연한 말들인데, 다른 조직보다 이더리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저 특성을 굉장히 강조하고, 웰컴하는 분위기입니다. 다시 한 번, 쫄 필요가 없는 것 같아요.
마치며
사실 더 깊은 얘기들을 옮기고 싶은데, 비방용도 있고 개인적인 대화를 하나하나 나열하는 것도 좋지 않을 것 같아 조금은 두루뭉실하게 써두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간직하겠습니다 😁) 다음 출장은 11월,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갑니다. 아마 그 쯤 되면 지금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도 완성이 될 거라, 이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더 많은 것을 느낄 거라는 희망이 있습니다. 다음주는 파리에 며칠 머물면서 못했던 관광을 좀 하려고 하는데 이번주에 에너지를 좀 많이 써서 잘 돌아다닐 수 있을진 모르겠습니다. 한국에서 다들 뵐게요!